다섯 분. 그리고 침묵.

지난 광복절 글에서, 사라져가는 이야기들에 대해 잠깐 이야기했습니다.

직접 겪은 사람이 사라지면 기억은 정보가 되어버린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 중 하나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려 합니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이야기입니다.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240명 중, 지금 살아계신 분은 다섯입니다. 평균 연세는 아흔여섯입니다.

1991년, 故 김학순 할머니의 첫 증언 이후 지금까지 세상을 떠난 피해자는 230여 명입니다.

그리고 이 오랜 시간 동안, 일본 정부는 단 한 번도 국가 차원의 법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사과가 없었다는 것보다 더 무거운 사실이 있습니다. 사과를 요구할 수 있는 당사자가, 이제 다섯 분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기록조차 인력과 예산 앞에서 멈춥니다

올해 5월, 경향신문은 정의기억연대 신임 이사장 한경희씨를 인터뷰했습니다.

35년 넘게 이 문제 해결 운동에 앞장서온 단체가 이제 '증언의 시대'에서 '기록의 시대'로 넘어가는 시점에서, 한 이사장은 기록을 보전할 공간과 인력이 현재 모두 부족한 상황이라고 인터뷰에서 밝혔습니다.

한 이사장이 강조한 건 한 문장으로 요약됩니다. 공공 차원에서 지속 가능한 인프라를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역사를 부정하는 목소리에 맞설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기록을 쌓고 공유하는 것이라고, 한 이사장은 같은 인터뷰에서 말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 기록을 쌓아야 할 공간도, 그 일을 할 사람도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 지금의 현실입니다.

실제로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의 1993년 증언 전문은 한때 여성가족부의 위안부 피해자 e역사관에 기록되어 있었지만, 지금은 알 수 없는 이유로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고 합니다.

30여 년간 증언 운동이 이어져 왔는데도, 기록은 여전히 새어나가고 있습니다.


증언은 자료가 아닙니다

우리는 위안부 문제를 이야기할 때 흔히 '자료', '기록', '역사적 사실'이라는 단어를 씁니다.

하지만 피해자들이 남긴 것은 문서가 아니라 목소리였습니다.

말을 잇지 못하고 멈추는 순간 같은 것은, 문자로 옮기면 그냥 마침표가 됩니다.

그런데 그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는 시간이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서두를 수도, 늦출 수도 없는 딜레마

생존해 계신 분들 대부분이 90대 중후반이라, 장시간 인터뷰 자체가 신체적으로 버거운 경우가 많습니다.

당시의 기억은 극심한 트라우마와 얽혀 있어서, 같은 질문을 반복해서 묻는 방식의 채록이 오히려 피해자에게 또 다른 고통이 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앞서 이야기한 공간과 인력의 부족까지 더해지면, 이 작업은 정부 기관 몇 곳과 소수의 연구자·단체의 힘만으로 감당하기 벅찬 일이 됩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이상한 딜레마 앞에 서 있습니다. 시간은 없는데, 서두를 수도 없는 딜레마입니다.


몇 분 남지 않았다는 것의 의미

숫자로만 보면 '5명'입니다.

하지만 이 다섯 분이 세상을 떠나시고 나면, 우리는 더 이상 '직접 들을 수 있는' 역사를 갖지 못하게 됩니다.

그 이후에는 오직 남겨진 기록, 남겨진 영상, 남겨진 문장들로만 이 문제를 이야기하게 될 것입니다.

그 기록이 지금 얼마나 남아있는지, 얼마나 더 남길 수 있는지, 저는 사실 잘 모릅니다.

다만 이 질문은 남습니다. 사라지기 전에 우리는 뭘 하고 있나.


여러분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혹시 증언을 직접 듣거나 읽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어떤 대목이 남았는지 알려주시면 저도 찾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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